한국인에게 음악이란 무엇일까. 과거에는 한국 전통 음악을 주로 지칭했다면 현재에는 서양 음악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것이다. 다시 말해 서양 음악이라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서양에서 탄생한 조성 음악 선법의 형태를 보편적으로 음악이라 정의한다. 어느새 한국인은 서양 음악을 수용한다.그리고 새로운 음악적 모국어가 자리하며 음악의 사고에도 확장을 꾀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화와 정서를 습득한 시기는 언제였으며 그 의미는 무엇일까. 서양 문물이 유입된 그리 멀지 않은 근대 개화기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인천이 있다.1885년을 기점으로 인천 개항장에는 개신교 선교사들이 입국한다. 선교사들은 복음, 치유, 교육의 기독교 이념에 따라 교회와 병원 그리고 학교를 건립한다. 특히 근대식 교육기관인 학교는 한국에 서양 음악을 소개하고 수혈하는 구심점으로써 음악사적 의미가 존재한다. 초창기 근대식 학교는 찬송가 또는 창가로 불리는 종교적이고 계몽적인 서양 음악 수업을 편성하였다.학교의 음악 수업은 성별과 신분과 관계없이 보편적, 체계적, 반복적인 교육을 의미한다. 이 시기에 한국인 학생들은 서양의 조성 음악 체계를 전문적으로 익힌다. 또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양 음악의 모습으로 재현되는 한국 음악의 탄생 시기라는 점이다. 즉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음악적 정서가 시작되는 발화점인 셈이다.개화기 인천에는 외국인과 한국인을 위한 다양한 학교가 존재했다. 그중 서양 음악 교육을 학제 편성한 대표적인 학교는 개신교 선교사 마가렛 벵겔이 설립한 영화학당을 예로 들 수 있다. 벵겔은 내리교회 2대 목회자 존스의 아내이기도 하다. 음악에 관심과 재능이 다분했던 존스 부부는 다양한 음악 활동을 전개했다.존스는 한국 최초로 우리말 찬송가를 엮어 찬미가를 공동 편찬하여 음악사적으로 중요한 업적을 남겼고, 벵겔은 영화학당에서 학생들에게 성악과 오르간을 가르치며 초창기 한국인 음악가를 양성했다. 이후 김애식, 김영의 등 한국 음악 교육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걸출한 인물들이 영화학당에서 배출됨은 당연한 결과로 이해된다.외국인 선교사에 의해 건립된 영화학당과 같은 미션스쿨의 학제는 이후 국공립학교 학제 편성의 길잡이가 되어 정규 음악 수업 설계에 영향을 끼친다. 이를 통해 한국 사회가 학교를 통해 서양 음악의 12음 평균율 체계를 음악적 모국어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된다. 이것은 음악사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이다. 서양 음악이 국민의 음악으로 자리할 수 있도록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이처럼 우리의 음악적 모국어 형성은 선교사들의 영향을 피할 수 없다. 결국 음악사적 영향에 있어 인천의 근대식 학교가 재조명된다. 물론 인천이 음악적 모국어 형성에 절대적인 기여를 한 것은 아니지만, 초기 근대식 음악 학제에서 국민에게 음악적 정서 함양의 기틀을 마련하고 영향 끼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현재 세계는 한류 열풍에 열광한다. 그리고 한국 문화가 세계적인 음악적 모국어로 자리하고 있는 추세도 발견된다. 과거 한국인의 음악적 모국어 형성에 기여한 인천은 오늘날 세계인에게 어떻게 다가설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할 시기가 왔다. 다시 말해 한국을 넘어 세계의 음악적 모국어 형성에 인천은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서양 음악을 수혈받던 우리가 다시 음악을 세계에 전파하며 어떠한 구심점이 될 수 있을지 21세기 음악 도시 인천의 역할을 고민한다. /이승묵 인천 콘서트챔버 대표출처 : 인천일보(http://www.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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